가까이에 있는 공연장에서 오페라를 한다고, 그리고 예일대 사람들에게는 할인까지 해 준다고 하여 구경갔다. 할인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격이 조금 비싸서 아주 윗 층에서 봤는데, 아래로 내려다보느라 나중엔 속이 안좋을 지경이었다. 같은 공연장에서 이후에 뮤지컬 렌트를 보았는데 (후기는 이미 작성한 그 공연), 렌트 공연 때 좌석 선택에 있어서 아주 좋은 지침이 되어주었다.
사실 오페라는 살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일단은 생전처음 듣는 이탈리아 말로 되어 있는데다, 뭔가 스토리도 비통하고 의미심장하고 그럴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코믹스럽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오페라도 존재한다는 걸 아예 몰랐었다. 사실 보러 갈 때만 해도 줄거리를 대강은 알고 갔지만, 이런 줄거리인 주제에 실체는 비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고 코믹스러운 그런 오페라였다. 오페라라면 무조건 어렵게만 느끼는 나 같은 사람에게, 생애 첫 오페라로 아주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본 건 모차르트의 Così Fan Tutte (여자는 다 그래)라는 제목의 오페라였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면,
줄거리
[제1막] 무대는 18세기의 나폴리다. 두 젊은 장교가 예쁘게 생긴 자매와 연애를 한다. 굴리엘모(Guglielmo)는 피오르딜리지(Fiordiligi)와, 페르난도(Fernando)는 도라벨라(Dorabella)와 사랑하는 사이다.
굴리엘모와 페르난도는 풍자적이며 장난기가 다분한 노총각 알폰소(Alfonso)와 점심을 먹으면서 여자의 마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철학자 알폰소는 “여자란 바람과 같아서 자기 애인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변덕을 부릴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남자는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가 뭐라고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으며 진심을 지킨다”라고 주장한다. 토론이 끝이 없자 결국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실험을 통해 가리기로 한다. 두 청년 장교는 알폰소의 계략에 따라 부대가 이동을 해 멀리 떠나게 되었다고 자매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러고는 알바니아 귀족으로 변장해 서로의 짝, 그러니까 굴리엘모는 도라벨라를, 페르난도는 피오르딜리지를 유혹하기로 한다. 두 남자는 사람들이 아무리 유혹해도 자기 약혼녀들은 한눈팔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알폰소는 “설마가 사람 잡지!”라면서 세상에 믿지 못할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두 청년 장교가 알바니아 귀족으로 변장하고 약혼녀들에게 접근해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해보지만 여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자매는 약혼자 굴리엘모와 페르난도 외에 딴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해도 안 될 일이라고 굳게 다짐한다. 진짜 약혼자들이 당장이라도 나타나면 꼼짝 없이 낭패를 볼 것이므로 위험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두 청년 장교는 알폰소에게 “보셨소? 당신 생각이 틀렸소!”라고 하며 내기에 이겼다고 말한다. 노련한 알폰소는 “속단은 금물”이라고 하면서 좀 더 지켜보자고 한다.
이제 하녀 데스피나(Despina)가 등장할 차례다. 데스피나 역시 알폰소와 마찬가지로 풍자적인 인물이다. 자기 주인인 두 아가씨가 평소에 하는 행동거지로 보아, 근사한 사람이 유혹하면 넘어갈 것이 분명하다고 믿고 있다. 귀족이라 할 일 없이 먹고 놀기만 하는 두 아가씨에게 은근히 반감을 가지고 있던 데스피나는 알폰소의 지원 요청에 기꺼이 응한다.
[제2막] 데스피나는 두 아가씨에게 약혼자들이 멀리 떠나서 외로울 텐데, 점잖고 예의 바르며 돈도 많고 멋있는 알바니아 귀족들과 얼마간이라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게 기분 전환을 위해 좋지 않겠냐고 설득한다. 집요한 설득과, 일종의 호기심, 바람기가 발동해 두 아가씨는 알바니아 귀족들과의 데이트를 허락한다. 두 알바니아 귀족은 계획한 대로 각각 파트너를 바꾸어 자매를 유혹한다. 자기들로 말하자면 오래전부터 멀리서 아가씨들을 지켜보며 흠모했다는 둥, 이제나마 아가씨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는 둥, 이 영광을 자손만대에 간직하고자 한다는 등등 죽는 시늉까지 하며 구애한다. 두 남자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 구애에 두 자매는 결국 사랑을 고백한다. 그토록 믿었던 두 아가씨가 너무 쉽게 마음이 변하니 두 남자로서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녀 데스피나가 공증인으로 변장해 결혼식을 진행하자 모두 결혼서약서에 서명한다. 이렇게 되자 알바니아 귀족으로 변장한 두 남자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옆방으로 가서 원래 복장을 하고 나타나 여자들을 혼내주기로 한다. 두 아가씨는 결혼을 서약한 신랑들이 잠시 나간 틈에 느닷없이 진짜 약혼자들이 나타나자 혼비백산한다.
남자들은 방금 전 아가씨들이 서명한 결혼서약서를 들이대며 해명을 요구한다. 두 아가씨들은 당신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런 일을 벌였겠냐고 펄쩍 뛰지만, 데스피나와 알폰소가 등장해 전모를 밝히는 바람에 모든 것이 들통 난다. 두 사람은 창피해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순간 아가씨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아니, 원인 제공자가 누군데 우리한테 누명을 씌우시나요? 그나저나 왜 변장을 하고 이 소란이람? 우린 당신들이 변장하고 나타날 때 알아봤다구요! 우리도 당신들 속이려고 한번 해본 거예요!” 굴리엘모와 페르난드는 이런 주장에 할 말을 잃는다. 자, 어찌 됐든 모두 용서!
[네이버 지식백과] 여자는 다 그래 [Così Fan Tutte, All Women Are Like That, All Women do the Same] (OPERA 366, 2011. 6. 27., 한울아카데미)
이런 진짜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변장을 하고 나타났다고 누군지 전혀 몰라보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니! 전반적으로 템포가 빠른 경쾌한 곡들이 많지만 사이사이 사랑을 노래하는 아련아련한 곡들도 가득 들어차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도 컸다. 어찌나 천연덕스럽게들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지. 여섯명의 인물들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매력이 있고 너무 선명하게 달라서 그것을 의도한 사람에게도, 저렇게 잘 연기해내는 사람에게도 존경심이 들던. 그나저나, 뮤지컬을 볼 때에도 두 시간을 저렇게 온 에너지를 쏟아가며 공연을 하고나면 정말 힘들겠다, 싶었는데, 오페라는 더하더라. 뮤지컬에 비해 비교적 배우들이 적고 그 소수의 배우들이 3시간 남짓을 가득채워 힘껏 노래를 불러야 하는거니까. 정말 저렇게 공연 한번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버리겠지, 싶더라. 뮤지컬이나 오페라나, 공연이 비싸다고 투덜거리면 안되겠어.
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여기 미국에서도 영어 자막을 내보내 주었는데 아직은 회화보다 읽고 쓰기가 편한 우리에게 사실은 뮤지컬보다 더 편안한 관람이기도 했다.
오페라라면 사실 누가 가자고 제안하지 않고서야 그리 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 작품 이후에는 또 예일에서 주관하는 오페라 공연이 있다고 할 때 그냥 우리끼리 다녀와 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것 참, 대단한 발전이다. 비록 이후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을 때는 다른 일정 때문에 못가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 공연이 무겁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오페라에 대해 편견을 걷어내 준, 고마운 공연이었음에는 틀림 없다.
日常과 理想의 Chem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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