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 킹키부츠, 뉴욕
나의 두 번째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킹키부츠였다. 브로드웨이에서 경험한 첫 뮤지컬 위키드가 정말 멋졌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니, 뭔가 접근하기 어려운 느낌 (비싸고), 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기에 두 번째로 뮤지컬을 볼 기회가 되었을 때도 사실 막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브로드웨이 위크를 이용해서 본 건데, 때마침 그 주에 맞추어 뉴욕에 갈 일이 생기기까지 했는데도, 이번에 보면 좋고 못 보면 어쩔 수 없고- 하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그런데,
그래도 와이프가 뮤지컬을 무척 좋아하는 걸 아니까 이럴 때라도 점수를 따야겠다 여긴 건지 착하게도 남편이 나를 졸라 결국엔 뮤지컬을 예매하게 되었다.
첫 번째 뮤지컬을 정할 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무얼 볼까 고민을 무척 많이 했다. 어쩌면 처음 걸 고르는 것보다 더 많이 생각이 바뀌고, 또 바뀌고 했던 듯. 나는 이미 한국에서 내한 공연으로 보았지만 남편을 위해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를 볼까 하며 티켓 예매 직전까지 가기도 했고, 북오브몰몬을 볼까, 아님 또 뭐가 있나 고민하면서도 사실 킹키부츠는 그리 주요 후보작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남편이 왜 킹키부츠는 고민도 안 해? 하길래, 아-
맞다 그런 게 또 있었지, 하는 생각으로 찾아봤는데
마침 킹키부츠가 다른 공연들에 비해 같은 가격에 좋은 좌석이 그나마 많이 남아있었다. 평을 보니 또 다들 너무 좋다고들 하길래, 이런 내용의 뮤지컬이 나에게 잘 맞을까, 걱정을 조금 하면서도 결국 이걸 보기로 결정!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정말로 잘한 결정이었다.
일단,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시놉시스를 먼저 좀 보면
1막
영국 노스햄튼에 위치한 '프라이스 앤 선스'는 3대째 내려오는 신사화 공장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신사화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고, 디자인이나 유행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구두공장은 점차 기울어가고 있었다. 주인공 찰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얼떨결에 구두공장을 물려받게 되어 사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지게 된다. 구두공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찰리는 드래그 퀸 롤라에게 영감을 얻어 남성용 부츠를 제작하고 공장 이름도 '킹키 부츠'로 바꾼다. 부족한 디자인을 충당하기 위해 롤라를 디자이너로 영입하고 밀리노 슈즈 패션쇼를 준비하지만, 여장 남자인 롤라를 돈을 비롯한 공장 남자 직원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에 적응해보고자 롤라는 남성용 정장을 입고 출근하지만 위화감은 여전하다. 롤라는 찰리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롤라의 아버지는 프로 복싱선수였고, 롤라에게 남성성을 강요했다. 롤라는 구두와 드레스를 좋아하는 자신과 아버지에게 남성성을 교육받은 자신 사이에 갈등하다 결국 아버지와 의절하고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기로 결심한다. 찰리도 아버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롤라에게 말하며 둘은 진정한 친구로 발돋움한다.
2막
공장 남자 직원들과 롤라의 갈등은 점차 심해지고, 돈은 롤라와 복싱 대결을 신청한다. 롤라는 뛰어난 복싱 실력으로 돈을 압도하지만 마지막에는 져준다. 이를 깨달은 돈과 남자 직원들과의 관계는 회복된다. 밀라노 패션쇼가 가까워지자 찰리가 지나치게 직원들을 독촉하고, 이에 직원들이 반발하여 출근하지 않는다. 이런 직원들을 롤라가 설득해 다시 함께 일하게 된다. 그러나 밀라노 패션쇼에서 롤라는 평범한 모델은 킹키부츠의 매력을 살릴 수 없다며 계약을 파기하고, 찰리는 왜 '이상한' 모델을 쓰려고 하냐며 반발한다. 그런 찰리에게 롤라는 '위선자'라고 하며 떠난다. 롤라에게 찰리는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남자다운 사람'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편지를 쓴다. 결국 롤라는 패션쇼 때 돌아와 모델로서 쇼에 선다. 모든 직원들이 함께 패션쇼에 모델로 서고 패션쇼는 성공한다.
우와 나는 이렇게까지 줄거리를 다 알고 가진 않았는데, 찾아보니 다 나오는구나- 싶어 새삼 놀랍네...
성소수자에 관한 뮤지컬이라고 하니 좀 걱정이 되었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걱정할 만 했다고 해야 할 테지만 (그만큼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극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사실은 그 때문에 극이 더 감동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겠다. 웬일인지 시작부터 끝까지 영국식 영어를 사용해서 (배경이 영국이기는 하다) 처음에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었는데, 영어 자체도 위키드에 비해 더 빠르고 많고 그리고 비속어도 많아 확실히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웃을 때 매번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달까. 하지만 충분히 즐길 만큼 알아 들었던 것 같아서 그건 다행. 그리고 그것들과 별개로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특히 롤라의 춤과 노래는 과히 압도적이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배우들의 성량이 지금까지 봐 왔던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구나,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중간 즈음엔 주인공들과 함께 눈물이 나도 찔끔 나올 뻔도 하다가, 마지막엔, 이게 극이야 공연이야 싶을 만큼 흥이 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일어나 어깨를 들썩이며 (몸치인 내가 몸을 흔들흔들하며 박수를 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때의 나는 흥이 넘쳤다)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고- 정말 감동적이면서도 유쾌하고 신나는 것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흥이 넘치도록 즐거운, 그런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극장을 나와 길을 걷다가 거의 눈물을 쏟을 만큼 감동을 받았던 것은 뭐랄까-
함께 즐기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달까.
위키드의 경우, 킹키부츠보다 규모가 큰 공연이기도 하고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라 나 역시 그런 관광객들 중 한 명처럼 자리에 앉아 딱 그만큼의 거리감을 두고 극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면, (이것도 이제 와서야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킹키부츠는 정말로 방금 전까지 직장에서 열일하다 퇴근해서 사랑하는 이와 만나 공연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가득한 (딱 나처럼), 말 그대로 생활 속의 공연이라는 느낌. 하지만 역시 미국은 내 삶의 터전이라는 느낌이 아직은 들지 않아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불편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너무도 일상인 채로 공연을 즐긴 것이다.
일상과 일상이 아닌 것의 묘한 경계에 앉아 어릴 적 꿈꾸던 브로드웨이에서 이렇게 감동적인 공연을 볼 수 있다니, 처음으로!
진짜 처음으로 미국에 나와 살게 되어 정말 좋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 공연을 계기로 다음번 보고 싶은 공연들에 대한 생각이 전면 수정되었달까, 캣츠니 오페라의 유령이니 이런 거 말고, 정말 브로드웨이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을, 다음번엔 선택할 예정이다.
日常과 理想의 Chem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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