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원서 그림책 추천 :: 아이의 화난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싶을 때, When Sophie gets Angry, Really Really Angry by Molly Bang
좋은 책이라는 추천을 어딘가에서 보고 구입을 한지는 한참이 되었지만, 이 책의 진가를 알게된건 비교적 최근이다. 처음 책을 보았을 때는 동생과 싸우고 화난 소피가 화난 감정을 잘 다스리고 다시 가족과 함께하는 이야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 책이 어디가 어떻게 좋다는거지?), 알고보니 이렇게 불 같이 화가 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이 책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첫째 아이는 지금 46개월, 곧 네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데 최근 화를 내는 일이 잦다. 화가 나는 이유는 동생이 장난감을 가지고 가거나, 자기 머리를 잡아 뜯거나, 물거나 할 때, 혹은 본인이 잘못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칭찬스티커를 하나 떼어버리거나 할 때. 화가 무척 심하게 날 때에는 정말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대기도 한다. 처음 이런 모습을 목격하였을 때, 나는 무척 놀라서 한번만 더 그렇게 소리 지르면 니가 원하는 걸 절대 들어주지 않을거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얘기해, 하는 식의 대응을 했었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이 생각나 혼자 가만히 읽어보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같이 읽어보게 되었다.
When Sophie gets Angry, Really Really Angry by Molly Bang. 아주 얇은 페이퍼백이다. 이 여자 아이가 바로 소피. 화나 보이는 표정이 귀엽네.
이 페이지 말고도 소피가 무척 화가 났을 때를 표현한 그림이 더 있는데, 이걸 보는 순간 정말 놀랐다. 와 이거 진짜 딱 우리 딸이네. 이 생각을 비단 나만 한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딸 역시 이 책을 같이 읽다가 이 장면이 나오니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뭔가, 자기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걸까.
그리고 다음 장면... 이렇게 화가 났던 소피는 나중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 장면 역시 우리 딸의 경우와 너무 똑같아서 딸의 상황을 빗대어, 그랬지, 너도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고 나면 나중엔 엉엉 울어버리고 그러잖아. 그랬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끄덕.
그렇다면 소피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까. 마구 달리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가 저 멀리 바다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고, 집에 돌아오면 집에는 언제나 따뜻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까 싸웠던, 하지만 이제는 애틋한 동생이 있다. 이 장면에서도 뭔가 느끼는 점이 있는지 가만히 그림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 부분은 우리 딸에게 적용하기는 조금 어려워서 질문을 던져보았다. 소피는 이렇게 하면 화난 감정이 가라앉는다는데 너는 어떻게 하면 화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 놀이터에 나가야 하나, 요즘 단풍이 들고 있던데 나무가 예쁠지도 모르잖아. 이런저런 예시를 들어보였더니 아이는 대뜸, 핫초콜렛을 먹으면 돼요. 라고 한다. 책을 읽던 때는 아 그래? 하면서 그냥 같이 웃었더랬지.
그런데 그 이후, 한번 딸 아이가 무척 심하게 화가 났던 일이 있었는데, 여느 때처럼 소리를 지르다 엉엉 울다 하다가 울음을 마저 그치지도 못하고, 엄마 핫쵸콜렛 주세요 엉엉엉, 하는거다. 심각한 상황에 미간에 잔뜩 주름을 쓰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딸 아이의 그런 말이 너무 재밌기도 하고, 또 딸 아이가 대견하기도 해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물론 핫쵸콜렛도 만들어주었다.
좋은 책이 꼭 아이의 행동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 있었는지도 기억에 없었던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이의 행동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런 것이 바로 좋은 책의 힘인가,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의 이런 변화된 행동이 얼마나 갈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동생이 참기 힘든 행동을 할 때,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 감정은 스스로 잘 다스리면 된다는 깨달음이 한번쯤 아이의 머릿속을, 마음속을 스쳐지나갔다는 사실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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