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사실 우리는 모두 다 한편이야, 마스다 미리 <여자라는 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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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가 읽고 싶어 찾아간 자리였는데, 그 책은 없고 대신 같은 작가의 이 책이 있었다. <여자라는 생물>이라니 제목이 그리 끌리지는 않아서 고민을 했는데, 한 자리에 앉아 다 읽고 난 지금 생각으론, 들고 오길 잘했다! 

제목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여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비슷한 제목을 가졌으면서 이렇게나 주제가 되는 여자가 다를 수가 없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속 여자는, 현실에 저런 여자가 존재할 수 있어? 싶을 만큼 여자가 아름답게만 묘사되어 있다면, 이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집 안의 여자, 마스다 미리는 정말 현실 그대로의 여자다. 일본어 원제도 그대로 <여자라는 생물>인데, 읽으면서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처음 접하는 <여자라는 생물>의 마스다 미리는 유명한 만화가 인 듯. 책 안에 귀염 돋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도 모두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었나 보다. 15개의 주제로 작가의 생각이 적혀있는데 각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그 내용과 관련된 두 페이지의 만화가 그려져 있다. 요게 또 쏠쏠하게 재미있어서 매번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기대하게 되었다. 


책 속의 마스다 미리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41세였다가 나중에는 44세까지 되었던 것 같은데, 결혼도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자녀도 없다. (작가의 생각에는) 더 이상은 어리지도 예쁘지도 않아서, 지나가는 어리고 예쁜 여자들을 보고는 그녀들이 세상에게서 받고 있을 호의들에 대한 질투도 전혀 숨김없이 표현하며, 배까지 감싸주는 속옷을 발견하고는 이걸 한번 입고 나면 다시는 일반적인 속옷을 입지 못 할거라는 불안을 가득 안고서도 결국, 보기에는 흉하지만 편리함과 보온을 위해 그 속옷을 몇 개씩이나 사 들고 돌아오기도 한다. 스스로 혼자의 삶을 선택하고 지금껏 만족하며 잘 생활해 오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미래에 대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서는 나도 왠지 슬퍼졌다. 

40대 여성의 일상 생활과 생각들이 쓰여진 에세이지만 작가의 생각은 과거(본인의 어린 시절)와 미래(다른 연상의 여인 혹은 어머니를 바라보며)를 넘나들어 결국에는 질투의 대상이던 젊고 예쁘던 여성과, 어느 정도의 동료의식으로 바라보던 할머니라고 불리기에 적당한 연령의 여성까지를 모두 어느새 한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점이 이 책이 나에게 정말 가치 있게 느껴지는 부분인 듯.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느낌도 내가 너무 어릴 때에 이 책을 봤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어느새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 얼마나 더 금방 느끼지 못할 사이에 나도 저 나이가 되어있을지 상상하며 글을 읽는 내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마음 아프고, 또 즐거웠다.

대체로 즐거운 이야기들이 많기에 즐겁게 읽으면서도, 애초에 무척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걸 생각하면 의외의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었던, 예상 외로 괜찮았던 책이었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앞으로도 조금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31p.

그렇지 않다.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나는 서른 살 무렵의 생각과 변함없이, 부모가 되지 않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날의 일은 모른다. 이렇게 방방 떠 있는 나, 이대로 나이를 먹어가면 대체 어떤 인생으로 완성될까? 그쯤에서 삶의 방식을 바꾸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의기소침해지는 아침이 찾아왔을 때는 일단 산책을 나가서 따뜻한 것이라도 먹자! 그렇게 생각하는 나이고 싶다.


56p.

되돌아가서 울고 있던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기, 나도 옛날에는 그런 짓 했었어요. 그렇게 울고 있는 자신만 드라마의 주인공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사람 많이 다니는 길에서 남자친구와 싸우고, 훌쩍훌쩍 울어서 난감하게 한 적이 있다죠. 모텔 구조도를 일기장에 그릴만큼 들뜬 연애를 했었으니까요. 나는 끓어오르는 엉뚱한 화를 가슴에 품고서 천천히 역 앞 자전거 보관소로 향했다.


62p.

‘여자는 일로 죽지 않는다.’

이 카피를 보고, 아, 그런가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역 앞에 턱 붙어 있는 포스터다. 분명 옮은 말을 써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대체 무슨 포스터였을까?


94p.

나는 그때, 가볍게 내기를 했었다. 못 해요, 못 들겠어요,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는 나를 “멋지네”하고 생각해주는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아주 조금 기대했다.


138p.

그런 사이좋은 노부부들. 사진을 찍는 남편의 눈에 아내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늙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남편은 20대, 30대의 그녀 모습을 알고 있어서 매일 조금씩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렌즈 너머로 미소 짓고 있는 것은 에밀리나 다이애나 같은 이름의 한 명의 ‘사람’일 뿐, 거기에 할머니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149-150p.

“몇 살이 되어도 여자이고 싶다.” 하는 대사가 요즘 유행이다. 몇 살이 되어도 여자이고 싶다. 얼핏 들으면 좀 멋있는 대사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생물로 변신하는 인간이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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