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폴 오스터 <겨울일기>, 여름의 한가운데서 읽은 폴 오스터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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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래 여름휴가용 책이었다. 남편과 서점에서 휴가지 책을 고를 때 이 책을 발견하고 아-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폴 오스터의 겨울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밌겠는데? 싶었던 거다. 휴가지에서 여유 있게, 뒹굴뒹굴하면서 읽어야지. 잔뜩 기대하며 들고 가서, 실제로 그렇게 했다.







지금도 폴오스터의 겨울일기하면 떠오르는 장면들... 물론  자리에서 모두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항상 폴오스터가 쓰는 책의 첫 문장들에 감명받고는 한다. 뉴욕삼부작 중 유리의 도시에서가 그랬고, 우연의 음악에서도. 이 책은 폴오스터의 자서전적 기록이라고 하는데, 폴오스터는 스스로를 당신이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제 너무 늦기 전에 말해 보라. 그러면 이상 말이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말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작해서

 

문이 닫혔다. 다른 문이 열렸다.
당신은 인생의 겨울로 들어섰다.

 

로 끝맺는 이 책은 어느 새 예순이 넘어버린 폴오스터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라기보다는 본인 삶의 기록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감각적인 서술 방식을 사용하는데, 눈을 보면 눈에 대한 기억을 서술하기 시작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여태까지 살았던 집에 대해 생각해보자, 하면 처음 기억하는 집부터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를 쉴 새 없이 기술하여 놓는 식이다. 단순한 서술이라지만 적절한 위트나 풍자, 혹은 신랄한 비판까지 적절히 섞여, 읽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런 서술 속 틈틈이 바로 이곳에서 어떤 소설을 썼다든지, 이 사람이 어떤 소설에 등장했던 바로 그 인물이라든지 하는 식의 이야기들도 나와서 폴오스터의 대부분의 책들을 재밌게 본 나로서는 매우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움직이는 육체에 말이 뒤따라 나오고. 아름다움에 의미 없는 소음이, 환희에 지루함이 뒤따라 나왔다. 그러다 문득 당신 안에서 무언가가 열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세계와 사이의 균열 속으로, 인간의 삶과 인간 삶의 진실을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우리의 능력을 갈라놓는 속으로 추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직도 이유를 없지만 무한한 허공 속으로의 이런 갑작스러운 추락에 당신은 자유와 행복의 감정을 가슴 가득 느꼈다. 공연이 끝났을 때에는 당신은 이상 막힌 상태가 아니었다. 작년부터 당신을 짓눌렀던 의구심 때문에 더는 괴로워하고 있지 않았다. 당신은 더치스 카운티에 있는 당신의 집으로, 결혼이 파탄을 맞은 당신이 잠을 자던 작업실로 돌아왔다. 다음 당신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것을 보게 될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게 된 한 공연을 통해 펜을 놓아버릴 뻔 했던 폴오스터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장면이다. 이렇듯, 위대한 소설가들의 시작엔 언제나 글을 쓰게 하는 어떤 계기가 있는 것인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 질 녘 야구를 보다가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지, 하는 생각이 났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곳곳에,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몰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좌절하고 있을 때, 글문이 열리고 말문이 트이고 생각이 환히 뚫리는 느낌으로 불현듯 영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그걸 발견해 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문제일 뿐일지도. 


폴오스터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영웅은 아니라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차별이나 불의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소설 곳곳에 누군가의 옳지 않은 행동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게 나온다. 아는 사람일 텐데,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써도 되는 걸까, 되려 내가 걱정해 주고 싶을 만큼. 그렇지만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으로 일관된 비판을 하는 모습은 확실히 감동적이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 가득한 사람 같은 느낌. 나는 과연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예순이 넘어서도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가지고 갈 수 있을까.

 

폴오스터가 유일하게 찬양해 마지않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보이는 존재는 바로 그의 현재 부인 (두 번째 부인)이다. 처음 만난 날부터 온전히 사랑해서 일사천리로 동거를 거쳐 결혼에 골인한 이 부부. 폴오스터는 지금도 아내를 보면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곤 한단다.

 

당신들 사람은 이야기를 왔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이날의 저녁은 결혼 생활 여느 저녁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는 이것이 당신 부부의 특징이다. 세월 내내 당신들은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된, 끊이지 않고 이어진 기나긴 대화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바깥은 추운 겨울밤일지라도, 얼어붙을 듯한 빗방울이 거세게 창문을 때려도 당신은 지금 아내와 함께 침대 속에 있다. 호텔 침대는 따뜻하고 깔개는 부드럽고 편안하며 베개는 엄청나게 크다.

 

 부부는 이런 안식처 같은 부부라고 할지뿐만 아니다.

 

이것은 의식으로서의, 연속성으로서의, 가족 간의 통합으로서의 음식이다. 당신이 바다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상징적인 닻이다. 당신이 결혼한 집안에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있다.

 

폴오스터는 스스로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부족하고 조각나 있다고 생각하지만대신 이렇듯 견고한 바탕을 가진 부인을 만나 집안의 일원이 되어  하나의 가족이 자신의 삶에 스며드는 것에 대해 안정감에 대해 설명하는데나는  상황을 비추어보지 않을  없었다조각  파편 같았던 내가 견고한 정신세계를 가진 지금의 남편과  가족들을 만나편평한 땅에 올곧게 뿌리내릴  있게 되었다고 느꼈지.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훑고 나서는 이미 안정적인 가족과 부인과다시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그러한 생각들을 하다가  속의 아침이 밝아오고 책은 끝이 난다.

 

당신의 어린 자식들을 품에 안는 .
당신의 아내를 품에 안는 .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걸어가면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당신의 맨발. 당신은 예순네 살이다. 바깥은 회색이다 못해 거의 흰색에 가깝고 해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당신은 자문한다. 번의 아침이 남았을까?
문이 닫혔다. 다른 문이 열렸다.
당신은 인생의 겨울로 들어섰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왠지 남편과 대화가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기에 곰곰이 혼자서 책의 감동을 곱씹었다. 혼자서 시간을 조금 더 보내야만 했기에 읽고 있던 다른 책을 꺼내 보았지만, 이 책에 너무 깊게 빠져 있어 다른 책에는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 나에게 남은 무수한 밤들을 생각하며, 내일 학교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열정을 불태워 해 내야만 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무척 감동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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