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004 :: 미국 동부의 겨울, 눈, 또 눈,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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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 동부로 일하러 가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뉴욕에서 한동안 머물렀던 선배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와- 없는 게 없는 데를 가는 구나, 스노우스톰 블리자드 거긴 진짜 없는 거 없이 모든 재난이 다 있어.


더 덥고 말고를 떠나 볕의 세기 만큼은 한국과 비교가 안될만큼 쨍쨍한 여름을 지날 때만도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세상에- 10월에 첫 눈이 오더니 이듬 해 3월 말까지 눈이 내렸다.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학교가 쉴만큼 많은 눈이 내린건 올 겨울에 두번이었는데, 두번째에는 특히 마을 전체에 Travel Ban이 걸려서 정말 출근을 하지 못했다.


처음 눈 때문에 학교가 쉰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그래도 꾸역꾸역 출근을 하면서도 정말 하늘이 구멍 난 것처럼, 이렇게 눈이 내릴 수도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눈이 너무너무너무 계속 내리니까 마구 웃기고 재밌어서 깔깔거리면서 웃기도 했다. 서울에도 오래 살았지만 이렇게까지 거대한 눈을 보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랬었는데, 두번째는 더 엄청난 것이 닥쳐서 아예 Travel Ban이 걸려버리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집 안에 꼼짝 없이 갇혀 창 밖을 바라보는데 멈출 줄 모르고 내리는 눈이 무섭게 쌓여가는 동안 그 새하얀 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던. 옛날 미국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이야- 되게 고요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인위적인 느낌.


그래도 3월에 닥친 거대한 눈보라의 여파는 영상과 영하를 오락가락하는 비교적 따뜻한 날씨 덕에 첫번 보다는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고 나서는 이렇다할 눈보라가 없었지만, 이 놈의 추위는 대체 언제쯤 끝나는 건지. 겨울 코트를 벗어 던진 건 물론 오래 전이지만, 아직도 늦가을용 두터운 가디건을 입고 다니는데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랬었는데 드디어! 따뜻한 오늘이 왔다, 드디어! 남편이 오늘은 따뜻할 거라며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는 추울지 모르니 어제 입었던 가디건을 그대로 입고 갔다가 내일부터 가벼운 차림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조언 해 줄 때만 해도 그래? 하고 말았는데, 점심을 먹으려고 밖엘 나갔더니 정말 실감이 났다. 몰랐는데 어느새 사람들의 옷차림이 놀랍도록 가벼워져 있었고, 점심은 여느 여름날 처럼 잔디밭에서, 벤치에서, 볕을 받으며 따사롭게 먹고 있더라.


항상 밥을 먹던 곳에서 먹을 것을 풀어놓고 먹기 시작하려는데 창 밖의 풍경의 변화도 새삼 놀라웠다. 아- 저 건물 지붕에 눈 쌓인 사진 어디 있는데... 사진 속 앙상했던 나뭇가지들엔 어느새 꽃도 피었다 져물어가며 라이트그린의 싱그러운 잎새들이 매달려있다. 푸른 잎새 사이로 쏟아지는 초록빛 햇볕도 한결 체온이 높아져 있고, 바람이 불면 사르륵 사르륵 움직이는 잎새들이, 어쩜 이렇게 싱그러울 수가.


아무런 생각 없이 기계처럼 해야할 일을 하고, 읽어야 할 것을 읽고, 써야 할 것을 쓰는 동안 기계적으로 한 주가 가고 주말이 오고 또 주말이 가고 새로운 주가 시작된다. 어쩜 이렇게 단조로운가. 한 숨 쉬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그런 단조로움의 작은 블럭들이 빽빽하게 모여 이렇듯 기다란, 계절을 관통하는 시간의 길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머릿속에 잔뜩 들어찬 무거운 것들을 휘휘 머리를 저어 떨쳐내 버리고, 지금 골몰해야 하는 일만 생각하자. 언제나처럼, 작년 이맘 때 그랬었던 것처럼, 분명 이번에도 다 잘 풀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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