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최근 읽은 공지영 작가의 책 두권, <딸에게 주는 레시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반응형

[독서노트] 최근 읽은 공지영 작가의 책 두권, <딸에게 주는 레시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면서 막연히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다. 뭔가 작품 외적으로 너무 시끄러운 느낌이랄까. 그래서 내가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는 말을 들은 친구 하나가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책을 내게 선물해 주었을 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 혼자서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새로운 작가와의 이러한 반강제적인 만남도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더랬다.

그랬는데, 나는 바보같이 책을 읽는 도중에 그 책은 한국에 두고 몸만 미국으로 오게 된거다. 그런 이후로 시간이 몇년이나 흘렀다.

사실은 조금이나마 읽었던 그 책의 내용들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에 작년이었나 남편이 혼자 한국에 다녀올 일이 있었을 때 그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는데, 남편은 그 책을 찾을 수 없다며 그냥 돌아와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매달 정해진 금액을 내고 책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밀리의 서재'라는 서비스에 이 책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던 거다. 

그리하여, 아주 긴 길을 돌아 완독하게 된 것이다. 이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를.

제목 그대로 딸에게 주는 레시피들을 담은 책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딸에게 딸이 겪고 있는 쉽지만은 않은 인생에 대한 위로와 조언, 그에 더해 매일 그에 맞는 위로의 음식을 알려주는 형식이다. 

공지영 작가는 집에서 해 먹는 요리는 간단해야 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어서 레시피들은 하나같이 간결하고, 그래서 읽다보면, 정말 이렇게 해 먹어도 맛있다는 말이야? 하는 의심이 들어 직접 해보고 싶어지는 충동이 일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쯤은 해보기도 하였다).

음식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사실은 한편 한편의 글 안에서 딸에게 해주는 엄마로서의 무한한 사랑의 말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엄한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들이 참으로 좋았다.

신기했던 것은, 처음 이 책을 선물 받아 읽기 시작했던 그때에 나는 딸의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엄마의 입장이 되어 책을 읽게 되었다는 것.

그래, 나도 딸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 나도 내 인생에서 이런 걸 너무 늦게 알아 안타까웠는데, 잊지 말고 우리 딸에게도 이런 말을 꼭 해주어야지.
그래, 우리 딸도 꼭 이렇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등등, 책 속의 말들을 그대로 내 딸에게도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드물게 맘에 쏙 드는 에세이집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다음번에 손에 쥐게 된 책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다. 이번엔 공지영의 소설. 아주 초기작이라고 한다.

아직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인데도 아직까지도 대표적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인식되어 있다. 최근에 페미니즘이라는 말과 가장 각별하게 얽혀있는 또 다른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나는 읽어보지 못하였지만, <82년생 김지영>도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페미니즘 소설일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하고자 하는 말이 아주 뚜렷한 그런 소설이었던 것 같다.

소설은 주인공 혜완, 그리고 그녀와 대학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 경혜와 영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셋은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들로 각기 다른, 하지만 하나같이 빛나는 꿈을 가진 젊은 여성들이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떤 방면으로든 자신들이 인간으로서, 교육받은 엘리트로서 사회에서 역할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젊은 여성들.

하지만 이 밝고 빛나던 세명의 젊은 여성들이 십여년이 흐른 뒤, 사회에서 강요하는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거나 (혜완), 완전히 순응해버리거나 (경혜), 순응한 듯 보였지만 실은 내면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였거나 (영선) 모두 불행해져 버린 모습을 통해 남녀 평등? 주체적 여성? 과 같은 명제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껍데기 뿐인 말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책은 정말이지 흡인력이 대단해서 이틀도 채 되지 않아 완독해 버렸다. 책은 재미있었고,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대이기는 했지만 내 나름의 상황을 비추어가며 느낀 바도, 생각할 점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역시나, 공지영 작가의 시끄러운 개인사가 작품을 온전히 느끼는데 큰 방해가 된 것 같다. 주인공 혜완은 여러 면에서 작가의 모습과 많이 겹치는데, 앞서 읽었던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 딸에게 해주던 공지영 작가의 말들도 생각나면서, 혜완의 목소리로 서술되는 작가의 말들이 묘하게 자기 변명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작품에 실제 작가의 흔적이 너무나 강해서 집중이 힘들었다고나 할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품보다 먼저 기사나, 이런저런 구설과 같은 다른 경로로 공지영 작가를 먼저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훨씬 이 작품이나 공지영 작가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이런저런 공지영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았겠지.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때, 작가에 대한 설명은 작가의 연혁이나, 대표작, 작품의 특징 정도를 간추려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몇번 이혼을 했고 자식들이 어떻고, 정치적 색채는 어떠하며 어떤어떤 논란이 있었다는 식의 작가에 대한 너무 방대한 스토리는 작품을 읽는데에 방해가 될 뿐인 듯,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뒤이어서 공지영 작가의 또다른 에세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역시 딸에게 쓴 편지글 형식이다)를 읽기 시작하기도 했는데, 최근에 읽은 <딸에게 주는 레시피>와 너무 겹치는 느낌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내내 책 옆 어느 언저리에 계속 자리하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흔적도 이제는 조금 부담스러워서 읽다가 그냥 접어버리고 말았다 (이렇듯, 쉽게 열고 접어버리는 것이 또 무제한 책 서비스의 폐해.....).

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이런저런 도서 서비스를 신청해 두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ebook을 빌리기도 쉽게 되어있기도 해서이지만, 무엇보다 아기가 내 옆에서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을 때, 잠이 들었는데 내가 멀리가면 금세 알아채고 울어대기 시작할 때, 아기 옆에 꼭 붙어 할 일이 책 읽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몇 책들은 리뷰를 꼭 남기고 싶을만큼 강렬했는데 또 어느순간 기억에서 아주 희미해져 버리기도 한다. 책 이야기를 앞으로 종종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반응형

이미지 맵

Chemie

日常과 理想의 Chemistry

    '日常/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