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독자의 도덕성마저 서서히 마비시키는, 피터 스완슨 <죽여 마땅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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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독자의 도덕성마저 서서히 마비시키는, 피터 스완슨 <죽여 마땅한 사람들>

 

 

리디셀렉트 같은 월정액 전자책 대여서비스의 장점은 이렇듯 원래라면 읽을 것 같지 않을 책을 우연히 읽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평점 좋은 책으로 추천이 되어 있길래 무심코 담아서 처음 몇장을 읽은 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아주 몰입하여, 어느새 나는 새벽 세시가 넘은 캄캄한 새벽에 잠든 아기 옆에 누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릴리와 그녀의 살인 계획과 관련된 다른 셋, 이렇게 네명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서술해 나가는데, 이야기의 시작은 히드로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두 남녀 (릴리와 테드)가 만나는 것으로 부터다. 테드는 릴리를 다시 만나게 될 일이 없을 것을 알기에 자기도 모르게 내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점점 여자의 의도에 따라 묘한 방향으로 빠져버리게 된다.

 

 

#00

“아내를 죽이고 싶어요. 그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거죠”

 

말을 내 뱉는 순간에는 농담이었지만, 진지한 릴리의 눈빛 앞에 던져진 이 말은 어느새 완변한 살인 계획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01

초원에서의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과 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

 

소설의 여주인공 릴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처벌해 온, 남과 다른 도덕성을 가진 아주 매력적인 사이코패스이다. 어째서 이런 장르 소설 속 여자들은 매번 다 무척이나 매력적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릴리의 매력이 소설 전개에 다양한 방면으로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그러려니 이해해야 하겠지.

 

스토리를 조금만 더 풀어내어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소설을 관통하는 다양한 키워드만을 풀어보자면, 사이코패스, 외도, 돈, 살인, 형사, 반전, 그리고 반전, 마지막으로는 열린 결말 정도가 되겠다.

 

릴리가 스스로의 남과 다른 도덕성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좇을 때에는 마음에 조금 껄끄럽고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했지만 소설을 점점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릴리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고 판단하다가 그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 원제는 The Kind Worth Killing. 이런 사람들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다른 누군가를 죽인 것, 그런 정도로 내면을 파괴한 것도 아니라, 성희롱 혹은 외도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여 마땅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02

“솔직히 난 살인이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게다가 당신 부인은 죽여 마땅한 사람 같은데요.”

 

하지만 이렇듯 릴리의 시선에 따라 죽임을 당할 사람의 인간적인 부분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무수한 지구 위의 사람 중 비도덕적인 하나로 대상화 시켜버린 다음에 그 살인은, 도덕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남들이 모르게 조용히 제거해 버리는 것, 들키지 않으면 괜찮은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실 법에 따르지 않고 소설 속 누군가의 개인적인 도덕적 판단으로 죽여야 할 사람을 추려내고 실제로 죽이고, 그러한 범인을 찾아낸다는 내용은 너무 흔한 소재이지만, 그리고 사이코패스로 나오는 릴리 외의 다른 등장인물들조차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조금은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어쩐지 몰입되고 자꾸 다음장이 궁금해지는 것은 확실히 이 소설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다.

 

열린 결말의 책은 기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에서만큼은 적절한 결말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있었다. 서점에 가서 고이 사 든 책을 집 안 서재에서 조심스레 넘겨보는 류의 책은 아닐지라도, 기차역에서 급하게 먹는 국수처럼 전자도서로 후루룩, 혹은 도서관에서 때 탄 책을 가지고 와서 휘리릭 넘겨 삼키기에 매우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
국내도서
저자 : 피터 스완슨(Peter Swanson) / 노진선역
출판 : 푸른숲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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