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 윤광준 <심미안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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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 윤광준 <심미안 수업>

 

 

 

심미안 수업. 사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조금 웃음이 났다. 심미안이라는 것이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심미안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눈을 말하는 것일 테다.

 

책의 제목이 <심미안 수업>인 것에서 느낄 수 있 듯,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정보들을 풀어주는 종류의 책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보통 예술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들을 바라보는 방법이랄까, 태도, 마음가짐 같은 것을 알려주는 그런 책이다. 

 

작가와 함께 친해질 예술의 분야들은,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 순서로 준비되어 있다.

 

미술과 음악의 경우, 미술관도 다니는 걸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데다, 클래식도 어느 정도 들어왔던 터라 너무 당연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러한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아가는 것만도 흥미가 돋았다.

 

#00

삶의 여유가 있을 때 무엇인가를 즐기는 것보다, 삶이 고단할 때 마주한 아름다움이야말로 더 소중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술은 삶의 여유가 있을 때 향유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삶이 고달플 때나 행복할 때나 늘 함께하며 삶을 조금은 더 풍성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것일까.

 

#01

내 작업실에 사람들을 불러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익숙한 소리를 듣는 것이지 낯선 음악은 전달되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이 틀어달라 부탁하는 곡들은 한때 알고 있었던 음악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신청하는 음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음악 취향은 모두 과거완료형이라는 것이다. 성장을 멈춘 어른들이 한때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일이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한때의 교양, 한때의 지식, 한때의 세련됨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새로운 취향을 만들지 못한 것은 먹고사는 일에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줍게 자기의 옛 추억을 꺼내놓는 그 마음이 애틋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을 전부 찾아 들려줬다. 음악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예전의 감동을 다시 느꼈다고, 잊고 살았던 풍요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 그들이 다시 음악을 찾아 듣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속상한 일이다.

 

예술을 예술로만, 특정한 시기, 혹은 때에만 향유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작가는 안타까워 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아주 적은 노력으로 예술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단지 미술관에 돈을 내고 가는 행위를 통해서, 혹은 음악을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러 가는 행위를 통해서. 미술에서 시작해서 보통 사람의 일상과 점점 가까워지는 건축, 사진,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넘어갈 수록 이러한 일상 속 아름다움을 어떻게 향유해야 하는지에 대해 눈을 뜨는 것만으로 내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라 (사실 많이 읽어왔던 편이라) 예술에 대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 있다니, 새삼 고맙고 반가웠다. 정말 누구라도 호기심이 일어 작가의 말대로 미술관에 갔다가, 비싸지 않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하나 사들고 집에 올 수 있다면,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행복할 것이며, 처음으로 구입한 미술품을 두고두고 바라보는 마음 또한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02

취향이 단단해질수록 삶은 구체성을 띤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디테일을 채우는 방법이다. 그들이 지나온 인생은 매우 풍부했을 것이다. 삶의 공간마다 시간의 예술로 채워왔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말처럼,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삶이란 분명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디테일하게 행복할 것만 같다.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웃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다른 이의 입맛에 꼭 맞았던 책을 어느 정도의 의심을 안고 읽었다가 만족감을 얻었을 때에는, 혼자 고른 책을 읽고 좋았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어 항상 즐겁다.

 

 

https://schluss.kr/1327

 

윤광준- 심미안 수업

심미안이라.. 어릴 땐 그게 뭔지도 몰랐고, 어느 순간부터 찾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궁금하다. 아름다움이란 것이 뭔지 궁금하여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었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가끔 전시를 보러..

schlu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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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나는 ‘딜레탕트dilettante’에 가까운 사람이다. 딜레탕트란 좋게 말하면 예술 애호가지만, 나쁘게 말하면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많이 알지는 못하는 사람, 어떤 분야를 깊이 탐구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04

와비 사비는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 관념으로 부족하고 검소한 상태, 적막하고 조용한 상태를 가리킨다. 일본의 정원을 보면 공들인 멋진 정원 한구석에 허름한 초가집 같은 다실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이들이 가진 와비 사비 미의식이다.

 

#05

심미안을 기르려면 자신이 잘 모르는 낯선 대상과 마주했을 때의 첫느낌이 중요하다. 그 느낌을 어떻게 내 마음에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명작은 위대하다. 익숙한 명작을 안내인 삼아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내자의 역할이 끝나면 스스로 미술을 여행하는 자발적인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 너무 당연하게도 세기의 명작도 처음에는 다 낯선 그림이었다.

 

#06

외형을 표현하는 일이 지극하면 내면의 심리도 전달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그림이 즐비한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고야의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07

명작은 기본적으로 긴 세월을 견딘 작품이다. 명작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졌고,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도 남아 있을 것이다. 시공을 뛰어넘는 불멸성을 이미 갖췄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시간에 맞서 변하지 않는 대상과 마주할 때의 경험은 강렬하다. 뛰어난 예술품 앞에서는 누구든 겸손해진다.

 

#08

결국 추상화는 ‘의도성’이 매우 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 의도가 형태에 없을 뿐이다.

 

#09

서양화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재현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그림은 피조물인 인간을 신에게 접근시키는 수단이었다. 신이 만든 피조물을 인간이 실제와 같이 그릴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이를 반복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 이것이 예술의 목표이기도 했다. 신의 능력인 창조에 가깝게 가려는 열망이었다.

 

#10

동양은 달랐다. 현실을 다루는 것엔 관심이 적었다. 수양을 쌓아 이치를 깨우치고 도道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었다. 동양화의 산수는 아무리 실제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라 해도, 그 안에 인간이 본 적 없는 이상향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다.

 

#11

감상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이 풍기는 힘과 내용의 공감이다. 화가의 에너지를 느끼고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12

세상의 모든 예술 행위는 구체적 재료를 써서 추상의 목표, 어떤 완성에 도달하려는 과정이다. 건축은 철근, 콘크리트, 유리와 같은 재료를 써서 의도한 형상을 만들어간다. 미술은 물감을 비롯한 각종 재료로 이미지를 만들고 형태를 만든다. 문학은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으로 전체적인 서사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반면 음악은 다른 예술에 비해 과정보다 결과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측면이 강하다. 악기를 쓰기는 하지만 소리라는 추상적 재료로 음악이란 구체적 완성으로 다가선다. 작곡 과정을 보면 완결된 음악적 ‘상象’을 먼저 떠올리고, 그 전체적인 상을 각각의 악기로 해체시켜 흐름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예술에 비해 훨씬 더 연역적임을 알 수 있다.

 

#13

나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변형과 왜곡과 압축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것을 지켜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음악에 담긴 그대로의 시간에 내가 놓일 때 생기는 ‘감정의 동조’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한 압력이다. 꼼짝없이 감정이 고조되는 자의 기쁨이다. 아마 다른 예술가들이 음악가들에게 갖는 부러움 중의 하나는 이것이기도 할 것이다. 음악가는 자신이 축조한 세계에 사람들을 꼼짝없이 가두어놓는 능력자인 것이다.

 

#14

현대사회에서는 라디오, 오디오, TV, 스마트폰 등을 통해서 음악을 쉽게 재연하지만, 원래 음악의 본질은 현장에서 공연되고 사라지는 음의 순간성에 있다.

 

#15

음악의 ‘원본’은 현장성이다. 말장난 같지만 재연되는 미술은 미술이 아니고, 재연되지 않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음악은 다른 예술과 달리 매번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즉 오늘이라는 시간에 재연되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끊임없이 재연될 때 그 미감의 깊이가 드러난다.

 

#16

지금은 손에 든 스마트폰만으로 젊은 시절에 들었던 곡보다 수백 수천 배 많은 음악을 소비할 수 있다. 많은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감동은 배고픔과 같아서 충분히 먹고 뱃속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야 포만감이 들게 마련이다. 한 곡 한 곡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으면, 좋은 음악도 놓치고 만다. 그리고 하나의 아름다움이 주는 포만감에 충분히 만족해야 다른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도 생겨난다.

 

#17

그제야 밀라노 대성당 같은 건축물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해되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은 그 존재가 인간을 굴복시키려는 용도였던 거다. 이런 대단한 건물을 세우고 유지할 수 있는 힘과 권능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건축이 거대하고 화려할수록 큰 힘이 생겼던 것이다.

 

#18

좋은 건축물은 보고 싶고 거닐고 싶고 머물고 싶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경로가 뚜렷하게 눈에 보인다. 내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금방 찾을 수 있고, 그 자리에 앉고 싶어진다. 특정 각도에서 바라볼 때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이 있다. 건물 곳곳에서 형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높이와 두께의 조화로운 비율을 발견한다. 건축물의 외형 속에 숨은 본질을 찾아내고 싶어진다. 그 본질을 구현하고자 했던 어떤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이 거대한 구조물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만든 것임을 깨닫는다. 그럴 때 느껴지는 뭉클함이 있다.

 

#19

데이트는 이런 데서 해야 한다. 좋은 건축물이 내뿜는 에너지를 함께 느끼면, 그 관계가 좋아지지 않을 수 없다. 핫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곳들은 재미는 넘칠지 모르지만 깊이는 떨어진다. 그런 장소에서 신나게 놀아야 할 때도 있지만, 깊이를 가진 장소에 우리 자신을 놓아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굳이 절이나 성당에 가는 것도 그 이유다. 좋은 건축은 생각이 고이고 좋은 감정이 생기게 한다.

 

#20

또 하나 사진의 미학은 수정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에 있다. 오늘날 포토샵을 비롯한 이미지 보정 기능이 사진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선택한 내용은 되돌릴 수도 수정할 수도 없다. 아주 짧은 선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사람의 의지와 판단이 끼어들지 못하는 냉정하고 결연한 감동을 준다.

 

#21

좋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관심에 골몰하는 게 필요하다. 자기만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여기에 흐트러지지 않는 하나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메시지가 여러 가지면 안 된다. 이 사진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 건지, 그걸 분명히 하는 게 좋다. 상대에게 동시에 여러 가지를 전달하는 일은 어렵다. 하나라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을 때는 이런저런 욕심을 낸다. 그러면 사진이 흐트러진다. 감정의 초점이 안 맞는 것이다.

 

#22

때문에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그러나 사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인식에서 빠져나간 것들을 길어 올린다. 사람들이 놓쳐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재확인되는 희미한 기억과 내용이다. 쉬운 예로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당시 가족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사진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 들고 있는 가방은 물론 주변의 세세한 정보까지 담아낸다. 사진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인간의 기억이 놓쳐버린 부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반응하게 되는 사진의 감흥은 보지 못했던 것을 확인하게 된 놀라움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사진을 통해 희미한 기억과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 시간이란 엄청난 힘에 맞서, 사진은 사람의 기억보다 항상 더 많은 걸 보여준다.

 

#23

나는 일상의 물건에서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면 구태여 수집의 번거로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음반을 빼놓고 의외로 내겐 수집품이 없다. 소유해서 만족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소유가 목적이 되면 계속 결핍감이 생겨난다. 일상의 사물은 어쨌든 소유가 아니라 사용에 목적이 있다. 생필품을 수집하는 이들이 없듯이, 나도 내 주변의 사물을 애호하나 특별하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구태여 소장품을 공개하라면 예쁜 만년필 다섯 자루 정도랄까.

 

 

심미안 수업
국내도서
저자 : 윤광준
출판 : 지와인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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