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그리하여, 우리 인간이 지금도 여행을 위해 짐을 꾸리고 있는 이유는, 김영하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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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그리하여, 우리 인간이 지금도 여행을 위해 짐을 꾸리고 있는 이유는, 김영하 <여행의 이유>

 

 

 

책의 띠지에 보면 "이 책을 쓰는데 내 모든 여행의 경험이 필요했다"라고 씌여있다. 처음에 책을 제목만 보고 구입했을 때에는 (한국에 가는 남편에게 사다달라 부탁해야 했기 때문에) 김영하가 여행에 관해 쓴 에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 광고글을 보고 나니, 이 책에 실린 아홉개의 글을 다 읽고 나면 여행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걸까,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것이 아홉개의 서로 다른 글이 아니라, 여행의 이유라고 하는 책의 제목이 동시에 책이 풀어 내고자 하는 목적도 되어 마지막은 그 여행의 이유라는 것의 해답으로 수렴하게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끼는 의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는 거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추방과 멀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직 현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다

이렇게 아홉개의 글이 실려있다.

사실은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요즘 한국도 책이 정말 비싸구나, 싶은 생각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이 비싼데 너무 얇은 것 같네. 유명 작가라 그런가, 하는 생각. 첫번째 글, 추방과 멀미를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역시, 그저 그런 여행에 관한 에세인 것 같아 여전한 불만이 있었는데, 첫번째 글을 다 읽어나갈 때 쯤 되니까, 흠, 책이 비싼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짧은 글 안에서 추방과 멀미라는 단어와 관련된 사건들이 절묘하게 엮이더니 마지막엔 역시나, 싶은 미소가 돌도록 소설가 다운 결말을 보여주어 참 좋았다. 작가가 공을 들여 만들어 낸 한권의 책을 손에 들고 가격 타령 했던 내가 너무 볼품 없게 느껴졌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직 현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그리고 노바디의 여행 같은 글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여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골똘히 생각해 보았더라면 그리 새롭지 않은 생각들이라 주제 자체는 꽤 진부하지만 역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힘이 워낙 좋아서인지 힘을 풀고 편안히 따라가며 읽어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은, 알쓸신잡 프로그램을 촬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직접 프로그램 안에서 여행을 했던 주제에, 완성된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 재밌는 생각을 했었다니.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제목은 보면서 갸웃했는데, 바로 직전에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단편집 안에 들어있던 한 단편의 제목과 완전히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제목의 단편을 쓴 이유를 이제서야 제대로 알것만 같았다.

마지막 글, 여행으로 돌아가다에서 작가는 자신이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 쓰고있다. 작가가 밴쿠버를 거쳐 뉴욕에서까지 도합 3년 정도를 외국에서 거주할 때에, 한국에는 딱히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는 마땅히 있어야 할 베이스캠프가 없었기 때문에) 길긴 하지만 역시나 여행이었던 외국에서의 생활이 어째서 여행같지 않았던가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볼 때에는, 지금 내 상황과 너무도 비슷해서 무척 공감이 갔다.

전반적으로 힘을 풀고 가볍고 편안하게 보기에 좋은 글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김영하가 하던 팟캐스트를 너무 들어서 그런지 자꾸 귓가에서 김영하가 책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거다. 문체 같은 것에 너무 익숙해 져 버린 것 같기도 하고. 김영하의 소설을 세권쯤 읽다가 이 여행의 이유를 읽었는데 너무 김영하만 읽었던 것 같다, 이제 좀 쉬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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