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마 여행 :: 기대반 긴장반 바티칸 시국 / 투어콘서트 바티칸투어 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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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8 - 이탈리아/로마 여행 :: 기대반 긴장반 바티칸 시국 / 투어콘서트 바티칸투어 후기 (1)


전편에 이어, 우리는 팔각정원이라 불리는 벨베데레 정원으로 들어섰다.





벨베데레 정원은 팔각으로 둘러싸인 정원으로 아치형의 회랑 아래에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이 것은 라오콘 군상.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로마의 한 농부가 포도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발굴 당시에는 라오콘의 오른팔이 없었단다. 당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오른팔이 위를 향해 뻗어 있을거라 추측하였는데 유일하게 미켈란젤로만이 남아있는 조각의 근육 모양을 근거로 오른팔이 위로 굽어 있을거라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발굴 이후 400년의 세월이 흘러 로마의 한 석공이 작업장에서 떨어져 나갔던 오른팔을 발견하였는데, 그 모습이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위로 굽은 형태였다고. 근육의 모양만 보고 원래의 팔 모양을 예측한 미켈란젤로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옛날에 근육의 모양까지 완벽하게 조각을 해낸 사람도 참 대단한 것 같다.


라오콘은 그리스군이 선물한 목마를 트로이 안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했던 트로이의 사제이다. 이에 분노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바다의 뱀 두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감아 죽인다. 라오콘 군상은 바로 그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거라고. 그 묘사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가리켜 '예술의 기적'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지고, 베드로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가 바로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라오콘 군상은 바티칸 미술관 건설의 계기가 되기도 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이 발견됐던 것은 1506년 1월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인근에서였는데, 당시의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 (Julius II, 1443~1513)가 이 조각을 바로 구입하고 이를 계기로 대중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자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술관을 지으라고 지시를 했던 거라고.


이 곳 벨베데레 정원에도 다른 둘러보고픈 작품들이 많았지만, 사람이 워낙에 많았고 이 날은 12월의 마지막 날로 바티칸을 나가야 하는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급하게 다음 코스로 이동하였다.





이어지는 뮤즈의 방에 전시된 이 작품은 벨베데레의 토르소. 처음부터 팔다리가 없는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아이아스 장군이 율리시스와의 전쟁에서 지고 난 후 자결하는 모습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좋아하였는데 작품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자 이 작품은 이것만으로 완벽한 작품이라며 의뢰를 거절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의 뒷편부터 관람하기 시작해서 앞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정말 그냥 일반적으로 걷기조차 힘들만큼 붐볐던 내부....





붉은색 벽면에 거대한 조각상들을 전시한 원형의 방. 여기는 얼핏 판테온 처럼 보이는 공간인데, 역시나 판테온와 똑같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크기는 절반 정도라고 한다. 이 곳에는 로마의 분수대였다가 네로 황제의 욕조로 쓰였다는 큰 자주빛 대리석이 놓여있다. 이 색의 대리석은 황제만이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욕조는 네로의 궁전에서 가져온 것인데 아래 바닥까지 통째로 옮겨온 것이라고.





그리스 십자가의 방. 정말 믿을 수 없이 사람이 많았다. 내가 따라가야할 표식을 좇아가는 것만도 버거웠던. 아무튼 이 곳에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세인트 헬레나와 그의 딸인 콘스탄자의 자주색 관이 전시되어 있다. 바닥의 장식은 대리석이 아니라 유리에 무기물을 넣어 색을 입힌 것인데 전쟁의 여신 아테나를 그린 것이다. 3세기 경에 만들어졌는데 로마인들의 별장 Tusculum에서 가져와 장식한 것이라고 한다.





촛대의 방에 있는 다이애나 여신상. 많은 가슴을 볼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듯 다산의 상징이라고 한다. 마지막 사진에서 바닥의 타일이 또 엄청 고가의 것이라고 한다. 이 파란 돌이 엄청 비싼 돌이여서 나라의 허가를 받아 돌을 갈아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같이 유명한 예술가들이나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엄청나게 붐비는 와중에도 작품 하나하나를 제대로 설명해 주고자 애 쓰는 가이드 분이 대단해보였다. 하지만 가이드와 거리가 가끔은 조금 멀어질 때도 있고 해서 (인파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여기 옆쪽으로 보이시는 어쩌고- 할 때 그 작품이 뭔지 파악하기가 힘들 때도 있었다.





이어진 곳은 아라찌의 방. 테피스트리를 직조한 작품들이 모여있는데, 이게 다 진짜 사람이 짠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 방의 천장화를 보면 실로 놀랍다. 이게 조각이 아니라 원근법을 적용해 입체적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조각 작품으로 착각했을 것 같다.





화려한 황금빛 천장화가 시선을 압도하는 지도의 방 사진 잔뜩 투척. 벽면 양쪽에는 당시 교황이 지배하던 성당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부츠모양의 이탈리아 지도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지도의 방 복도는 넓이 6m에 길이는 무려 120m나 된다고. 천장을 보면 하나하나 무척이나 섬세한 조각과 그림들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어지는 소비에스키의 방과 무척 인상적이라는 라파엘로의 방 등은 당일 사정으로 인해서 둘러볼 수 없었다. 천지창조로 유명한 시스티나 소성당은 들어가 볼 수 있었으나,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그냥 눈으로만 감상하였다. 천지창조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미켈란젤로의 역작으로 무척이나 유명하고 여기저기서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익숙했는데, 바티칸에 입장하기 전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더니 더 쉽게 감상할 수 있었다. 프레스코화는 천장에 석회 반죽을 바르고 석회가 마르기 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매우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동안 고생했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놀라움을 벗어나 경외감 같은 것.


그리하여, 이어지는 이야기는 성베드로 대성당.





성베드로 대성당 가는 길. 성당에 입장하기 전에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입장하여 개별 관람하였다. 







성베드로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왜냐하면, 이보다 크게는 성당을 지을 수 없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제일 아래 사진은 성 세바스티아노 제단. 이 아래에는 17세기 교황 중 신앙심과 도덕심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 받는 인노켄티우스 11세의 무덤이 있다.





교황의 제단인 발다키노.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는 베드로 성인은 바로 이 발다키노 아래에 잠들어있다고. 여기서는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고 한다. 발다키노 뒷쪽으로 커다란 십자가를 든 석상이 보이는데 이는 성녀 헬레나 석상이다. 다른 석상들에서 성 론지노는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성 안드레아는 성 십자가의 조각을, 성녀 베로니카는 예수의 얼굴이 찍힌 수건을 들고 있다고 한다.





사진에는 없지만 베드로 성당 바닥에서는 교황을 상징하는 고유 문양과 글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곳 아래에는 해당 교황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투어의 시작부터 무척이나 기대했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담은 조각이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26세때 조각한 작품으로 모세상, 다비드상과 함께 3대 걸작 중 하나라고 한다.


피에타가 유리 안에 이렇게 보관되어 있게 된 이유는 예전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라고. 어떤 미치광이가 "나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외치며 석상을 망치로 내리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작품은 복원되었는데 흩어진 파편들 중 코 조각을 결국 찾지 못해 석상 뒷쪽을 조금 잘라서 만들었다고.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의 젊은 외모와 아들을 잃은 슬픔은 찾아 볼 수 없이 평온한 얼굴 탓에 논란이 되었었다고 하는데,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신성한 처녀인 동정녀로의 마리아를 젊게 표현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신의 아들인 탓에 슬픔을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작품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식으로 바라보면 죽은 아들을 품은 성모 마리아의 황망한 손이 그 슬픔을 표현하는 듯 하다. 역시나 위에서 내려다볼 때 예수의 얼굴을 보다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데, 이는 작품 자체가 원래 신의 관점에서 조각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래에, 위에서 내려다본 피에타의 사진을 첨부해보았다. 논란이 되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도록 신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조각은 뭐랄까 더 완벽해 보여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들어간 유일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서명이 남겨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후 미켈란젤로가, 신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고도 아무런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 고작 조각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는 사실을 후회하며 다시는 작품의 스스로의 서명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고. 미켈란젤로의 신앙심은 아주 대단했던 걸로 보인다.


피에타를 아주 열심히 감상한 것을 끝으로 성베드로 대성당을 모두 둘러보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성당을 나와서 성베드로 광장을 조금 더 둘러보았다. 바티칸에 가면 꼭 봐야한다는 스위스 근위대의 모습. 근위병이 입고 있는 의상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아래는 성 베드로 대성당 파사드. 카를로 마데르노가 설계하였다. 파사드 위 중앙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12사도의 상이 광장을 내려보고 있다.





성베드로 광장은 베르니니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무척 유명하듯 위에서 보면 베드로 성인의 상징인 열쇠 모양을 하고 있다고. 우리는 시간 관계상 돔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아, 아쉬워라. 


아무튼 광장 가운데 이것은 이집트 오벨리스크. 칼리귤라(Caligula) 황제가 40년 고대 이집트에서 가져와 원형경기장에 놓은 것을 1586년 경기장에서 순교한 이들을 위해 현 위치로 옮겨온 것. 높이는 25.5 m라고 한다. 로마 곳곳에서 다른 오벨리스크를 찾아볼 수 있다. 


이로써 우리의 바티칸 투어는 끝이 났다. 아침 일찍부터 지하철이 고장나기도 하고 암튼 아주 힘든 여정이었다. 밖에서 기다릴 땐 추웠고, 바티칸 내부에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도 가이드 투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법한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어서 가이드 투어를 한 선택은 잘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바티칸이 연말에 유독 이렇게 바쁘다는 사실을 몰랐다. 정말 극성수기인 모양. 다음번에는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운 시기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 무척이나 인상적이라는 라파엘로의 방 역시 보지 못했으니, 다시 와야할 이유는 분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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