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 임신 초기 (-10주), 입덧, 임신 초기 출혈, 그리고 희비가 교차하던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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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 임신 초기 (-10주), 입덧, 임신 초기 출혈, 그리고 희비가 교차하던 하루하루


작년 연말부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많은 대화를 하긴 하였지만 중단되면 어찌될지 모르는 내 커리어 문제도 그렇고 해서 선뜻 마음을 먹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올 초 한국 방문을 계기로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랬지만 이렇게 덜컥 임신이 될 줄은 몰랐다. 다들 계획을 하고 1년 정도는 지켜보다가 임신이 되거나 더 기다려도 안되면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기도 한다고 하길래 우리도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할 줄 알았지. 남편이나 나나 둘다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임신을 계획했지만 실제로 임신을 하게 되는 건 조금 더 먼 미래일 줄 알았다.


그랬는데...


이상하게 몸이 으슬으슬 춥고 감기 기운이 있구나 생각하며 며칠을 보내다가 불현듯, 설마 임신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생각은 하면서도 술도 줄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다가 예정일이 이틀 지나 근처 월그린스에 가서 홈프레그넌시 테스트기를 구입하였다. 한번도 구입해 본 적 없어서 마트에 가서 어디에 있는지를 한참 찾아야 했었지. 참고로 월그린스나 유사한 그런 미국 마트들에서 Home Pregnancy Test는 콘돔 옆에 자리하고 있다.


정말이지 길었던 겨울이 끝나가며 이제는 정말로 만연한 봄이구나, 싶었던 4월의 어느 날이었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어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미리 사 둔 테스트기를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혼자 가만히 서서 결과를 지켜봤다. 그리고는…. 홈 테스트기의 양성 확인. 


여보, 두 줄인데?

어안이 벙벙해 져서는 내가 던졌던 첫 마디, 반면 남편의 첫 마디는, 


뻥 치지마!

였다. 정말 말 그대로, 우리 부부에겐 정말 뻥 같은 일이 일어난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임신했다는 와이프한테 처음으로 던진 말이 뻥 치지마! 일수가 있냐고, 이후에 나는 장난스럽게 남편을 많이 놀렸다.


결국 직접 두 눈으로 확인까지 하고서야 뻥이 아님을 확인한 남편은 다시 옷을 챙겨 입고는 다른 테스트기를 하나 더 사오자며 나갔다. 그리고 재확인. 역시 양성이었다. 생리 주기로 계산해보면 5주 하고도 3일이 된 시기. 주기로 계산한 주수는 나중에 병원에 진료를 보고 나면 아이의 크기로 다시 판단해서 바뀐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이 주수가 꼭 맞았다.



처음엔 가장 저렴한 walgreens 브랜드 제품으로 샀었다가 두번째에 가장 정확하다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다시 사 보았던 Home Pregnancy Test



이후의 한 주는 병원 예약을 잡느라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첫 진료를 잡는 시기가 꽤 늦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에 맞는 병원은 당연히 일하는 대학의 병원이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으려니 보통 8에서 10주 사이에 첫 예약을 잡는다고 했다. 근데 내가 진료를 받아야 할 8에서 10주 사이에 빈 시간이 없다며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거다. 3일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아 다시 걸어보았더니 역시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 밖에… 처음 전화를 하고 딱 일주일이 되던 날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첫 진료 날짜는 9주의 막바지에 걸친 9주 6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실 병원 예약을 하기 전부터 미국에서는 미리 테스트기로 임신 확인을 했다고 바로 예약을 잡아주지 않고 10주 가까이까지 기다렸다 오라고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주 여유롭게 1~2주 기다렸다 병원에 전화해도 괜찮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알아보니 처음 병원에 가는 날짜는 10주 가까이에 잡아 준다 해도 대부분의 병원들이 아주 바쁘게 예약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전화해서 예약을 잡아야 한다고 한다. 임신을 확인한 때에 바로 병원에 전화를 하면 마지막 생리가 시작한 날짜를 묻고 그 날짜를 근거로 내가 첫 진료를 받아야 할 날을 계산해서 알아서 예약을 잡아준다. 그러니까 나처럼 아주 여유있다고 생각하면서 굳이 병원에 전화하는 것을 미룰 필요는 없다.


임신을 확인하고 첫 진료 날짜를 잡은 후에도 정작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중에는 너무 이상하고 믿음이 안가서 남은 테스트기로 그냥 한 번 더 테스트를 해 보기까지 했다. 이렇게 확신이 가지 않는 상태로 첫 진료 날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생각하던 찰나 올 것이 왔다. 입덧.


처음 임신을 확인하고 딱 8일째 되던 날 아침은 눈을 뜨면서 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도시락을 싸는데 헛구역질이 나더니 겨우 마신 오렌지 쥬스를 그대로 토해냈다. 계속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그나마 먹은 쿠키 한조각까지 토해내고 나서는 그대로 앓아 누워버렸다. 입덧을 다루는 방법을 몰라 정말 고생했던 첫 며칠이었다.


남들은 어떻게 하나 찾아보기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입덧을 다루는 방법을 어찌어찌 찾아갔다. 속이 비면 더 울렁거리니까 조금씩 뭘 먹어가며 속이 비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단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군것질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고 하루 두 세끼 밥만 먹던 사람이라 자꾸 입에 뭘 달고 먹어야 하는게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말 그대로 속이 비어가려고만 하면 배고픔보다는 울렁거림이 먼저 찾아와 나를 힘들게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오이와 토마토 정도. 다른 이들의 후기들을 읽고 나서야 크래커와 두유까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차가운 면 종류만 연신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찬 물에 말은 찬 밥 정도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뜨거운 밥은 물에 말아도 넘길 수 없어서 밥을 하고는 일부러 식힌 후에 찬 물에 말아 먹었다). 2주 정도 심각하게 나를 괴롭히던 입덧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바로 다음날에 다시 찾아오는 식으로 장난질을 쳐대기도 했다. 하지만 씻은 듯 괜찮은 어떤 날들에는 고기도 구워먹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으며 그나마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식탐이 아주 강한 편은 아니지만 살면서 한번도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하며 먹고 싶은 걸 못먹으며 살아본 적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아주 큰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바라, 이렇게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 특히 먹고 싶은 음식이 아무 것도 없고 입덧을 가라앉혀 주는 음식을 억지로 입 안에 구겨 넣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힘들었다. 먹기 싫은 크래커를 억지로 입안으로 집어 넣다가 울음이 왈칵 터지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아이가 태어나 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들이 더 크게 느껴져 후회가 밀려오는 적도 많았다. 이제 우리 여행은 다 간거야? 나는 이제 오로라는 못보는건가. 칸쿤은 이제 죽어도 못가겠지. 등등. 그러던 중에 일이 터졌다.


6주 며칠 쯔음 지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샤워를 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는데 갈색 출혈이 생긴 것을 보았다. 임신 초기 출혈은 안 좋은 징후일 수 밖에 없어서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나와 인터넷 등으로 정보를 검색해 보는데 겁이 나서 손이 덜덜 떨렸다. 식은땀이 자꾸 나서 얼굴을 한번 더 씻느라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혼자서는 설 수도 없을 것 같아 남편에게 얼른 집으로 들어오라고 연락을 한 후 자리에 누워 일단 쉬었다. 이 날 밤은 한국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던 날이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의 기쁨도 개인의 슬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더라.


일단 갈색 출혈은 이미 고여있던 피가 나오는 거라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고 해서 그나마 안심을 하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왈칵 붉은 피가 새어나왔다. 그래서 당장 병원에 전화를 해서 당일 진료 예약을 잡았다. 첫 진료 날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병원에 가게 된 거다.


그리하여, 정확히 7주 1일 되던 날 병원에 가서 질초음파를 했다. 보통 생리 주기로 계산한 주수는 틀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그게 꼭 들어 맞아서 7주 1일 정도 크기가 되는 아이의 심장 박동까지 잘 볼 수 있었다. 급하게 예약을 잡느라 담당의가 아닌 의사와 진료를 봤는데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친절한 의사는 임신 초기의 출혈은 일반적인 현상이며 다행히 태아는 아주 건강하다고, 처방해 주는 prenatal vitamin을 하루 한알씩 챙겨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말해주었다.


이 날 이후로 임신을 계획했던 걸 후회한다느니 하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무척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하나. 임신 전에는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하는 식의 질문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하였는데 막상 임신을 하게 되니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건강하게만 태어나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까지는 테스트로 확인은 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아 남편과 나 사이의 일로만 두었었는데 직접 태아의 심장박동을 눈으로 보고 나니 조금은 실감이 나기도 해서 양가 부모님께도 임신 소식을 알렸다. 너무도 기뻐하시는 모습에 그 동안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많이 기다리셨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5월,


왔다갔다 하는 입덧으로 고생하던 여느 날 중 하루, 처음으로 내 담당 의사와 첫 진료를 보게 되었다. 아주 경험이 많아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의사. 아주 친절하고 또박또박한 말투로 내가 받게 될 진료에 대해 설명해 주는 점이 정말 좋았다.


의사의 진료실에서는 펩스미어와 몸의 이 곳 저 곳을 만져보아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복부초음파를 했다. 예전 질초음파를 했을 때엔 사진을 출력해 주지 않더니 이번엔 뽑아 주길래 안심이 됐다.



처음 받아 본 아가의 초음파 사진



남편과 나란히 앉아 가능한 유전질환이나 가족 병력에 대한 상담까지 하고 나서 진료가 끝이 났는데 딱 1시간이 걸렸다. 임신 11주에서 13주 사이에 해야하는 초기 기형아 검사는 다른 시설로 가서 해야하는데, 직접 예약을 잡으라며 안내를 해주고 다음 진료 날짜를 잡은 후 나는 Lab으로 가서 소변과 혈액을 채취해야했다. 혈액은 무슨 검사를 그렇게 하는지 8개 정도의 튜브에 혈액을 가득 채웠다. 병원을 나왔을 때에도 아직 아침 시각이라 남편과 같이 브런치를 맛있게 먹었다. 기대보다 긴장과 걱정이 더 되었던 첫 진료는 이렇게 끝이났다.


이 날 New OB Packet이라는 것도 받았는데 안에는 임신 중 궁금할 수 있는 사항이나 주의해야 할 점들이 꼼꼼히 적혀있는 책자 하나와 앞으로 내가 받을 검사들에 대한 설명이 적힌 팜플렛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센터에서 임신 중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이나 프로그램 등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는 팜플렛들이 있었다. 양이 너무 많아 처음에는 다 읽어보지 못하고 의사 선생님이 집어 주신 부분만 자세히 읽어보았다가 이후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 다 읽어보았다.



여기까지가, 우리 부부가 처음 아이를 만나 어찌할바 모르며 정신 없이 보낸 임신 초기 약 5주간의 이야기. 앞으로의 일들이야 여전히 예측불허이지만 이후에는 상황이 점점 안정되기만 했기 때문에 이 시절이 임신 후 가장 정신없고 불안하고 갈팡질팡하고 희비도 교차했던 날들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써 둔 일기를 보며 글을 다시 정리하다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나중이 되면 어떤 경험이든 다 추억이 되겠지만, 그렇다해도 역시 아무래도, 입덧은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아래는 참고!

우리는 다니는 직장 특성상 보험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출산 때 까지는 우리 돈 들 일이 한푼도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매번 받는 검사들 정보와 모두 보험 처리 되긴 하였지만 처음에 찍혀 있던 각 검사들의 비용들은 모두 정리해 두었다.


7주 때 받은 질 초음파 $89.00

9주, 첫 진료 때의 각종 혈액검사 및 소변검사 + 펩스미어 등 $65.00 + $87.00


첫 진료 때 받은 검사 상세 설명

New OB blood panel (Maternal Blood type and Rh factor, Antibody screen, Blood count, Rubella status, Syphilis screen, HIV antibody, Hepatitis B surface antigen and baseline urine culture), Pap smear and chlamydia/gonorrhea te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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